국내

국보 제2호 원각사지 십층석탑과 보물 제3호 대원각사비(탑골공원)

테리우스의 일기장 2022. 9. 15.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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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 2가 사거리에서 종로 3가 방면으로 향하다 보면 파출소 옆에 조성된 공원을 볼 수 있다.

노숙자들이 즐비하고 어르신들이 터 잡고 계신 광경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 이곳은 본래 사찰터였다.

기록에 따르면 고려 시대에만 하더라도 이 자리에는 흥복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숭유억불 정책이 펼쳐졌음에도 불구하고, 불교에 관대하였고 각종 불교사와 얽혀 있으며 그와 관련된 설화도 많이 존재하는 세조는 흥복사를 더욱 넓혀 원각사라는 이름의 절로 중창하였다.(세조 10년, 1464년)

원각사의 중앙에는 대적광전이 있었으며 수십의 전각이 존재하였다고 전해진다.

경복궁과 종묘의 사이, 한양의 중심에 세워졌던 그 원각사는 연산군 10년(1604년)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연산군이 원각사를 연방원이라는 이름의 기생집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연산군 대에 절터가 기생집으로 바뀐 이래 고종 광무 1년(1897년), 영국인 브라운에 의해 공원으로 재조성 됐는데, 이 공원이 바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공원인 탑골공원이다.

공원 내 대리석 백탑(원각사지 십층석탑)에서 파고다라는 표현이 유래돼, 파고다 공원으로 불리기도 한다.

1919년 3월 1일 2시, 민족 대표 33인이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 시위 운동을 일으킨 그 시발점이 된 장소이기도 하다.

공원 내부의 초입에는 보물 제3호인 대원각사비가 있다.

이는 세조의 손자인 성종이 재위 2년(1471년)에 할아버지가 원각사를 창건했던 경위를 적어 세운 비석이다.

비석의 생김새가 무척이나 인상적이다.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거북이의 등에,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몸돌과 머릿돌이 세워져 있다.

국보 제25호인 태종 무열왕릉비와 흡사한 형태인데, 아래 포스팅을 통해 비교해보면 좋겠다...

 

빼어난 용모의 지략가 김춘추가 잠든 곳 경주 태종 무열왕릉

앞서 김유신 묘를 방문한 뒤 이어서 무열왕릉으로 향했다. 김유신 묘와 무열왕릉 사이를 오가는 대중교통은 없고, 도보로 이동하기에는 제법 거리가 있기에 김유신 묘 입구에서 택시를 이용했

qlqlzhxh.tistory.com

 

비석의 높이는 약 5m 정도로, 꽤나 큰 사이즈이다.

거북이의 생김새부터 이수(비석의 머릿돌 부분)에 조각된 용의 형상까지 상당히 뚜렷하게 보존돼있음이 놀랍다.

더불어 비문은 당대 문장과 글씨로 이름 난 사람들이 맡아서 새긴 것이 관건이다.

비석의 앞면은 김수온이 글을 짓고 성임이 글을 새겼으며, 뒷면은 서거정이 글을 짓고 정난종이 그 글을 썼다.

이 네 사람의 업적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가 없다.

조금 뒤늦게 벼슬길에 오른 정난종을 제외하고 나머지 셋은 세종부터 성종까지 여섯 임금을 모신 인물들이다.
(정난종은 세조 대에 급제)

앞면의 글을 지은 김수온은 세종 당시 집현전의 학자로 역임하였으며 의방유취와 치평요람 등을 편찬하였고, 뒷면의 글을 지은 서거정 역시 세종 당시 집현전 박사였으며 그의 저술로는 동문선, 동국통감, 동국여지승람, 경국대전 등이 유명한데, 15세기 관학을 대표하는 대학자라고 말할 수 있다.

앞면과 뒷면의 글을 쓴 성임과 정난종은 세조부터 성종 대를 대표하는 문신이자 서예가이다.

성종은 대원각사비에 새긴 성임의 활달하며 굳센 글귀를 보고, 이름이 헛되이 나는 것이 아니라는 극찬을 남겼다.

정난종 역시 성리학에 밝은 인물로 세조실록 편찬에 참여하였으며 초서와 예서에 능했다고 한다...

대원각사비는 보존 상태의 양호성, 조각의 뛰어난 기술, 이를 만들어낸 이들 또한 당대 최고의 인물들이었다는 점, 역사의 흐름이 담긴 중요한 사료라는 것으로 미루어보아 무려 보물 제3호로 지정된 문화재라는 사실이 수긍된다.

탑골공원의 한 구석을 지키고 있는 국보 제2호 원각사지 십층석탑.

보다시피 자연적, 물리적, 화학적인 파손을 우려해 탑 주변으로 유리벽을 세워놓았다.

높이는 약 12m로, 3단으로 된 기단 위에 10개 층의 탑신이 올려져 있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이 탑은, 이보다 약 120년 앞서 개경에 만들어졌던 경천사지 10층 석탑과 형태와 양식에서 유사한 모습을 보인다.

전면에는 다양한 불상과 불경의 내용, 심지어 삼장법사 현장과 제천대성의 모습까지도 조각돼있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탑골공원은 다소 어르신들의 놀이터... 같은 분위기가 강해서 오며 가며 그저 입구를 보기만 할 뿐, 공원 내부를 거닐기엔 다소 주저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근대 3.1 운동의 시발점이자, 독립운동가들의 얼이 베여있는 곳이라는 점,
숭례문에 이어 국보 제2호 원각사지 십층석탑과
흥인지문, 옛 보신각 동종에 이은 보물 제3호 대원각사비가 남아있는 역사문화적 보배와도 같은 곳이다.

공원의 규모가 작으니, 인사동 나들이를 갈 적에 간단히 들러보면 참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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