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래 경주에 다녀올 적에 문득 스쳤던 유치한 생각. '경주 애들은 첨성대를 눈 감고도 다니겠지?'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서울의 상징과도 같은 곳들을 다녀온 기억이 그리 많지가 않다...
늘상 오며 가며 보는 것들이라 그런가?
종로 일대는 눈 감고도 다닐 정도지만 정작 종묘를 마지막으로 방문한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모처럼 날 잡고 서울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종묘를 다녀왔다.
종묘 정문인 외대문 앞쪽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종묘 어정.
조선의 역대 왕들이 종묘에 왕래할 때 이 우물의 물을 마셨단다.
종묘의 정문인 외대문.
입장권은 성인 1,000원.
유네스코 유산치고는 무척 저렴하다. ㅋㅋ
2011년에 타지마할 입장료가 한화로 약 12,000원이었는데...
안타깝게도 현재 종묘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정전이 보수 공사 중이다.
이미 2020년 9월부터 진행 중이었으며 내후년에야 공사가 끝날 예정이란다...
종묘.
조선의 500년 도읍이었던 서울의 중심부에 위치한 유적지로, 조선의 선왕들을 모시는 사당이다.
1394년(태조 이성계 3년)에 짓기 시작하여 그 이듬해인 1395년에 완공됐다.
조선 왕조는 유교에 뿌리를 둔 만큼 제사를 무척이나 중요하게 여겼는데, 유교의 예법을 따르는 것은 왕실의 권위와도 직결되는 중대사였으므로 이성계는 종묘를 가장 먼저 지었다.
이는 종묘가 조선의 상징이면서도 동시에 왕실의 정통성을 보여주는 신성한 곳이었음을 의미한다.
조선 시대에는 지금의 정전만을 종묘라고 불렀으나, 현재는 정전과 영녕전 그리고 이 일대를 통틀어 종묘라고 한다.
종묘 안내도.
외대문을 지나면 바로 보이는 위 안내도 앞에 문화해설사 분들이 서서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는데, 원한다면 해설사분들의 해설을 들으며 종묘 투어를 할 수 있다.
망묘루가 붙어있는 향대청 일원.
향대청은 제례에 바칠 향, 축문, 폐백을 보관하고 제례를 주관하는 제관들이 대기하던 곳이다.
지금은 유물 전시 및 창고로 이용 중이다.
망묘루 뒤쪽에 조그마한 공민왕 신당이 있다.
공민왕은 고려 말 신진사대부의 등장을 억제하던 정방을 폐지함으로써 이성계를 비롯하여 정몽주, 정도전 등의 등장 발판을 마련하였다고는 하지만, 종묘에 고려 왕의 신당을 모셔놓았다는 것은 고개가 갸우뚱해지는 부분이다.
심지어 그 이유는 밝혀진 바가 없단다.
공민왕과 그의 왕비인 노국대장공주 영정.
좌측엔 공민왕이 친히 그렸다는 말 그림이 있는데, 신당 안으로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멀찍이 떨어져서 볼 수밖에 없다.
향대청.
정면이 10칸, 측면은 2칸으로 길쭉한 형태이다.
신실.
신주와 신주독, 신장, 신탑, 책장, 보장이 놓여 있다.
향대청 일원을 지나 재궁 일원으로 향했다.
재궁은 임금이 세자와 함께 제사를 준비하던 곳이다.
정면에 보이는 전각은 임금이 머물던 어재실,
우측은 세자가 머물던 세자재실,
좌측은 어목욕청이다.
임금과 세자는 이곳에서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한 후 서쪽 문으로 나온 뒤 정전의 동쪽문으로 들어가 제례를 올렸단다.
조선의 임금과 세자들이 하였던 것처럼 재궁의 서쪽문으로 나오니 바로 정전이 보인다.
앞서 얘기했듯이 정전은 현재 보수 공사 중이기에 다소 어수선한 모습이다.
정전 동쪽에 위치한 전사청 일원.
제례를 치를 때 사용하는 음식을 마련하는 곳으로 평소에는 제사용 집기들을 보관하였단다.
현재 전사청도 입장이 불가했다...
전사청 옆에는 제정이라고 하여 제례에 사용할 물을 긷던 우물이 있다.
우물이 생각보다 깊다...;;;
우물을 덮고 있는 덮개가 얇은 아크릴 같은 것이었는데, 왠지 호기심 왕성한 어린이들이 위에 올라갈까 무서웠다.
공사 중인 정전 일원.
국보 제227호 정전은 종묘의 꽃과도 같은 곳이다.
이곳은 왕과 왕비가 승하 후 궁궐에서 삼년상을 치른 다음에 신주를 옮겨와 모시는 건물로, 조선의 역대 왕 중에서도 흔히 누구나 그 업적을 알만한 왕들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태조, 태종, 세종, 세조, 성종, 중종, 선조, 인조, 효현숙영정순헌철고순)
길게 펼쳐진 묘정 월대는 안정을, 건문 전면에 무한하게 반복되는 듯한 기둥의 배열은 왕위의 영속을, 수평으로 하늘 끝까지 펼쳐지는 듯한 지붕은 무한을 상징한다.
사실 정전 건물 자체만 보면 너무 단조로워 보이기 마련이다.
장식을 찾아볼 수 없으며 건물의 층고 자체도 낮은 데다, 동시대에 세워진 경복궁의 장엄함과 매우 대조된다.
그러나 이곳은 왕실의 제사를 모시는 곳이므로 엄숙하면서도 숭고함을 드러내기 위한 의도적인 장치이다.
참고로 정전은 우리나라의 단일 목조 건물 가운데 좌우로 가장 길다.
(처음엔 그리 길지 않았으나, 시간이 흐르며 신주를 모실 공간이 부족해지자 옆으로 점점 늘려 현재의 규모에 이르렀다.)
내후년에 보수 공사를 마칠 정전의 모습을 기대하며 영녕전으로 향하였다.
영녕전.
정전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엔 태조의 4대조와 더불어 정전에 모시지 않은 왕과 왕비의 신주가 모셔져 있다.
(정종, 문종, 단종, 예종, 인종, 명종, 경종...)
정전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영녕전에서 메웠다.
정전에 비하면 그 규모가 작지만 양식 등은 거의 흡사하다...
이렇게 서울을 대표하는 유네스코 유산 중 하나인 종묘를 다 둘러보았다.
사직단과 더불어 조선 시대 가장 중요했던 제례 공간.
입장료가 거저나 다름없기에 부담 없이 방문하여 둘러보기에 참 좋다.
그저 문화재라고만 생각지 말고 우리 역사를 이끌어온 역대 왕들의 넋이 서린 곳임을 자각하며 관람하면, 보다 감회가 새로울 것이다.
외대문 옆에 이런 표지가 있다.
일제는 우리 민족의 얼을 끊기 위해 종묘의 외곽 담장 곳곳에 당시 일왕이었던 히로히토의 연호를 새겨놓았다.
더불어 도로공사를 강행하여 창덕궁에서 창경궁, 종묘로 이어지는 그 길마저도 끊어버렸다.
물론! 최근에 이 길을 다시 잇는 공사가 끝났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무척 의미 있는 복원 사업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린 과거의 치욕과 잔재를 꼭 기억해야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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