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가볼만한곳 썸네일형 리스트형 평화로운 정취를 느낄 수 있었던 안동 하회마을 안동을 떠올릴 때에 가장 대중적이자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곳은 하회마을이 아닐까 싶다.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가 지난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집성촌이며, 과거의 건축들이 옛 모습을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하회'라는 마을은 낙동강이 's'자 모양으로 마을을 감싸 안고 흐르는데서 유래되었다. 마을의 중앙에는 수령이 600여 년은 된 삼신당 느티나무가 위치해 있으며, 그 나무를 중심으로 집들이 배치돼 있다. 이곳에서는 서민들의 놀이였던 '하회별신굿 탈놀이'와 선비들의 풍류놀이였던 '선유줄불놀이'가 현재까지 전승되고 있고, 우리네 전통문화와 고건축 양식을 살펴볼 수 있다. 하회마을은 상당히 크고 넓은데, 관광객들의 편의를 위해 초입부의 하회장터 옆에서 하회마을 종합안내소까지 오가는.. 더보기 민족의 얼을 훼손시키고자 애썼던 일제의 만행이 남아 있는 곳 안동 임청각과 법흥사지 칠층전탑 안동 당일치기 여행의 시작이었던 봉정사에 이어 임청각을 방문했다. 보물 제182호인 임청각은 조선시대 민간 가옥 중 가장 큰 규모의 양반가 주택으로 알려져 있다. 더불어 대한민국 구국운동의 성지와도 같은 곳으로,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다. 독립운동가였던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였던 임청각은 독립운동 명문가로, 이상룡 선생을 포함한 11명이(동생, 아들, 손자, 조카 등...) 독립운동 유공자로 건국훈장을 받았다. 민족의 얼이 서린 이곳은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공사가 한창이다. 이유는 과거 일제가 정기를 끊기 위해 임청각 마당을 가로지르는 중앙선 철로를 내놓았는데, 지형회복을 위한 복원사업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듯 일제강점기 당시 중앙선 철로가 부설되면서 본래 99칸 건물이었던 이곳은 부속.. 더보기 호젓한 분위기의 암자이자, 신묘한 느낌의 정원 봉정사 영산암 천년고찰 봉정사는 비슷한 명성을 가진 여타의 사찰들에 비해 경내가 작고 아담한 편이며, 따라서 여러 전각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이런 이유로 큰 부담 없이 둘러보기에 수월한데, 한편으로는 여운이 남기 마련이다. 그런 아쉬움을 채워주는 곳이 있으니 바로 봉정사의 부속 암자인 영산암이다. 한국의 10대 정원이라는 영산암으로 오르는 길. 부속 암자라지만 거리가 멀다거나 산길을 올라야 하는 것은 아니고 위 사진에 보이는 계단만 오르면 바로 영산암이다. 대웅전에서 도보로 약 1분 거리에 위치해 있다. 봉정사 영산암(동암)의 우화루. 영산암은 지조암(서암)과 더불어 봉정사의 부속 암자 중 하나로, 천등산 언저리의 봉정사를 중심으로 동, 서쪽에 두 부속 암자가 배치된 형태이다. 나한전, 염화실, 송암당, 삼성각, .. 더보기 세조와 정희왕후가 나란히 잠든 곳 남양주 광릉 광릉숲길을 따라 광릉까지(광릉 역사문화관과 재실) 늦더위가 기성을 부렸던 지난 주말. 떠나가는 여름의 옷자락을 붙잡고서 서울 근교 남양주, 정확히는 광릉과 봉선사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지난 수십 년간 4호선 상행선의 종점 역할을 했던 당 qlqlzhxh.tistory.com 봉선사 주차장 앞에서부터 광릉숲길을 따라 광릉에 다다랐다. 조선 7대 세조와 정희왕후의 능인 광릉. 우선 정희왕후 윤 씨(1418~1483)는 1468년에 부군을, 그리고 이듬해인 1469년엔 아들 *예종을 잃었다. 따라서 당시 13살이었던 손자 성종을 왕위에 올린 후 조선 최초로 수렴청정을 하였다. (7년 동안) 그녀는 세조 사후 15년 뒤인 1483년에 눈을 감았으며, 부군이 잠든 바로 동쪽 언덕에 나란히 묻혔다. 세조의 둘째 아.. 더보기 조선시대 토지신과 곡물신에게 제례를 올렸던 곳 종로 사직단 사직동. 우리나라의 각 주요 도시에서 가장 많은 지명을 가진 동네이다. 사직동의 유래는 한 해 농사의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제를 올리던 사직단에서 시작된다. 사직단은 종묘와 더불어 조선시대 국가의 정통성을 상징하는 곳이다. 종묘는 역대 왕들의 위패를 모시는 왕실의 사당인데, 역대 왕들에게 제사 지내기 위해 마련한 곳이다. 아울러 사직단은 토지신인 사(社)와 곡물신인 직(稷)에게 제사 지내는 곳이다. 종묘와 사직단은 국가의 가장 중요한 제례의 대상이었다. 유교사상을 근본으로 하고, 농경이 가장 중요한 산업 기반이었던 조선시대에는 왕실에 제사를 지내는 종묘와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기 위해 제사를 지내는 사직을 잘 지키는 일이야말로 왕실의 위엄을 세우고 백성을 잘 다스리는데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사극에 종종 .. 더보기 국보 제2호 원각사지 십층석탑과 보물 제3호 대원각사비(탑골공원) 종로 2가 사거리에서 종로 3가 방면으로 향하다 보면 파출소 옆에 조성된 공원을 볼 수 있다. 노숙자들이 즐비하고 어르신들이 터 잡고 계신 광경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 이곳은 본래 사찰터였다. 기록에 따르면 고려 시대에만 하더라도 이 자리에는 흥복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숭유억불 정책이 펼쳐졌음에도 불구하고, 불교에 관대하였고 각종 불교사와 얽혀 있으며 그와 관련된 설화도 많이 존재하는 세조는 흥복사를 더욱 넓혀 원각사라는 이름의 절로 중창하였다.(세조 10년, 1464년) 원각사의 중앙에는 대적광전이 있었으며 수십의 전각이 존재하였다고 전해진다. 경복궁과 종묘의 사이, 한양의 중심에 세워졌던 그 원각사는 연산군 10년(1604년)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연산.. 더보기 조선 왕조의 넋이 서린 곳 종로 종묘(유네스코 세계유산) 근래 경주에 다녀올 적에 문득 스쳤던 유치한 생각. '경주 애들은 첨성대를 눈 감고도 다니겠지?'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서울의 상징과도 같은 곳들을 다녀온 기억이 그리 많지가 않다... 늘상 오며 가며 보는 것들이라 그런가? 종로 일대는 눈 감고도 다닐 정도지만 정작 종묘를 마지막으로 방문한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모처럼 날 잡고 서울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종묘를 다녀왔다. 종묘 정문인 외대문 앞쪽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종묘 어정. 조선의 역대 왕들이 종묘에 왕래할 때 이 우물의 물을 마셨단다. 종묘의 정문인 외대문. 입장권은 성인 1,000원. 유네스코 유산치고는 무척 저렴하다. ㅋㅋ 2011년에 타지마할 입장료가 한화로 약 12,000원이었는데... 안타깝게도 현재 종묘의 꽃이라.. 더보기 자연의 품속에 안긴 채 전통을 간직한 선비촌 영주 무섬마을 그리고 외나무다리 다큐멘터리 3일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영주 무섬마을을 취재하였던 것을 본 적이 있다. 하얀 모래밭 흩어져있는 소담한 마을에 전통가옥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그 주위로 하천물이 굽이굽이 흐르는 풍경이 한 폭의 명화와도 같아 보였기에, 언젠가 그곳에 꼭 가 보고 싶다는 막연한 마음을 품었었다. 그리고 드디어 무섬마을을 방문했다...! 무섬마을의 안내도이다. 무섬이란 물 위에 떠있는 섬을 뜻하는 수도리의 우리말 이름이란다. 마을의 삼면을 낙동강 하류인 내성천이 감싸듯 휘감고 있기에, 육지 속의 섬처럼 보이는 물돌이 마을이다. 100여 명의 주민도 채 남지 않은 이곳은 안동 하회마을, 봉화 닭실마을 등과 더불어 오랜 전통을 가진 집성촌이자 선비촌으로, 대부분의 가옥은 전통가옥이며 몇몇 동은 100년이 넘는 조선시대 .. 더보기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