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문화재 썸네일형 리스트형 민족의 얼을 훼손시키고자 애썼던 일제의 만행이 남아 있는 곳 안동 임청각과 법흥사지 칠층전탑 안동 당일치기 여행의 시작이었던 봉정사에 이어 임청각을 방문했다. 보물 제182호인 임청각은 조선시대 민간 가옥 중 가장 큰 규모의 양반가 주택으로 알려져 있다. 더불어 대한민국 구국운동의 성지와도 같은 곳으로,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이다. 독립운동가였던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였던 임청각은 독립운동 명문가로, 이상룡 선생을 포함한 11명이(동생, 아들, 손자, 조카 등...) 독립운동 유공자로 건국훈장을 받았다. 민족의 얼이 서린 이곳은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공사가 한창이다. 이유는 과거 일제가 정기를 끊기 위해 임청각 마당을 가로지르는 중앙선 철로를 내놓았는데, 지형회복을 위한 복원사업이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앞서 얘기했듯 일제강점기 당시 중앙선 철로가 부설되면서 본래 99칸 건물이었던 이곳은 부속.. 더보기 마치 새 건물 같은 국내 최고의 목조 건축물 안동 봉정사 극락전 국보 제15호 안동 봉정사 극락전. 대웅전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봉정사의 꽃과도 같은 건축물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라는 그 타이틀 덕분이다. 나무 특성상 물리적, 화학적, 자연적 요소로 인해 훼손되거나 오염될 우려가 큼에도 불구하고 천년의 세월 동안 그 고유의 자태를 간직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주목할만한 일이다. 흔히 국내에서 오래된 목조 건축물을 언급할 때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을 들고는 하는데, 극락전과 무량수전은 정확한 창건 연대가 밝혀지지는 않았다. 다만 중수 기록등을 미루어 추측하건대 봉정사 극락전은 120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부석사 무량수전은 이보다 대략 13년가량 뒤늦을 것이라는 견해가 다수설이다. 이에 반해 수덕.. 더보기 국보 제2호 원각사지 십층석탑과 보물 제3호 대원각사비(탑골공원) 종로 2가 사거리에서 종로 3가 방면으로 향하다 보면 파출소 옆에 조성된 공원을 볼 수 있다. 노숙자들이 즐비하고 어르신들이 터 잡고 계신 광경 때문에 그냥 지나치기 십상인 이곳은 본래 사찰터였다. 기록에 따르면 고려 시대에만 하더라도 이 자리에는 흥복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한다. 이후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숭유억불 정책이 펼쳐졌음에도 불구하고, 불교에 관대하였고 각종 불교사와 얽혀 있으며 그와 관련된 설화도 많이 존재하는 세조는 흥복사를 더욱 넓혀 원각사라는 이름의 절로 중창하였다.(세조 10년, 1464년) 원각사의 중앙에는 대적광전이 있었으며 수십의 전각이 존재하였다고 전해진다. 경복궁과 종묘의 사이, 한양의 중심에 세워졌던 그 원각사는 연산군 10년(1604년)에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연산.. 더보기 조선 왕조의 넋이 서린 곳 종로 종묘(유네스코 세계유산) 근래 경주에 다녀올 적에 문득 스쳤던 유치한 생각. '경주 애들은 첨성대를 눈 감고도 다니겠지?' 서울에서 나고 자랐지만 서울의 상징과도 같은 곳들을 다녀온 기억이 그리 많지가 않다... 늘상 오며 가며 보는 것들이라 그런가? 종로 일대는 눈 감고도 다닐 정도지만 정작 종묘를 마지막으로 방문한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그래서 모처럼 날 잡고 서울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종묘를 다녀왔다. 종묘 정문인 외대문 앞쪽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종묘 어정. 조선의 역대 왕들이 종묘에 왕래할 때 이 우물의 물을 마셨단다. 종묘의 정문인 외대문. 입장권은 성인 1,000원. 유네스코 유산치고는 무척 저렴하다. ㅋㅋ 2011년에 타지마할 입장료가 한화로 약 12,000원이었는데... 안타깝게도 현재 종묘의 꽃이라.. 더보기 그 어떤 괴로움도 없고 오로지 즐거움만이 가득한 곳 부석사 무량수전 10만억 불토를 지나 극락정토를 향하는 여정과도 같이, 일주문에서부터 안양루까지 오른 끝에 마침내 무량수전의 앞에 다다랐다. 국보 제17호인 무량수전 앞 석등과, 국보 제18호 무량수전. 우선 석등은 높이 2.97m로 신라시대의 전형적인 팔각 석등이다. 상하 비례, 조각이 정교하기에 당대의 석등 중 으뜸으로 뽑히는 걸작이다. 화창 주위 네 면에는 보살입상이 1구씩 조각되어 있는데, 천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그 형태를 제법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석등의 화창 부분을 잘 살펴보면 그 주변으로 12개의 못 구멍 같은 것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과거에 석등의 불이 꺼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일종의 창문을 달았었음을 알 수 있다. 큰 의미는 없다만 석등이 무량수전보다도 국보 문화재 순위가 우선한다. 부석사.. 더보기 한 여인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사랑 이야기가 깃든 곳 영주 부석사(일주문에서 안양루까지) 글을 쓰기도 전부터 나의 마음을 설레게 만드는 곳. 불자로서, 역사와 문화재에 관심이 많은 사람으로서, 내가 국내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찰이자 문화유산인 부석사. 간단히 소개를 하자면 부석사는 신라의 의상대사에 의해 창건된 사찰이다. 원효대사와 더불어 화엄사상의 정수였던 의상대사의 업적은 무척이나 눈부시다. 당 유학길에 함께 올랐으나, 모든것은 마음먹기에 달렸다는 깊은 깨달음을 얻고서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온 원효와는 달리, 의상은 꿋꿋이 당으로 건너가 지엄의 아래에서 수학한 뒤 고국으로 돌아와 무수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 시작은 671년 창건한 양양 낙산사. 이후 의상은 수년간 전국을 다니던 중 교학을 정비하고 후학을 양성할 터전을 마련한다. 그곳이 바로 이곳 부석사다. 부석사의 창건과 관련해서는 두가지의.. 더보기 빼어난 용모의 지략가 김춘추가 잠든 곳 경주 태종 무열왕릉 앞서 김유신 묘를 방문한 뒤 이어서 무열왕릉으로 향했다. 김유신 묘와 무열왕릉 사이를 오가는 대중교통은 없고, 도보로 이동하기에는 제법 거리가 있기에 김유신 묘 입구에서 택시를 이용했다. (기본요금 거리인데 사실 택시도 잘 다니지 않는다...) 김유신 묘와 무열왕릉은 경주고속터미널 기준으로 서쪽에 동떨어져 위치한 유적지로, 이왕 방문할 거면 두 군데를 엮어서 다녀오는 것이 좋겠다. 무엇보다도 김춘추와 김유신은 둘도 없는 절친이었던 만큼, 두 묘역을 함께 방문해야 좀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사적 제 20호인 경주 무열왕릉. 이어서 김유신 묘가 사적 제21호로 지정됐다. 경상북도 경주시 서악동 842. 무열왕릉의 정문인 건무문. 건무문을 지나면 가장 처음 마주하게 되는 비각으로, 사실상 무열왕릉 자체.. 더보기 불국토로 이어주는 다리 연화교와 칠보교 그리고 백운교와 청운교 경주에서의 이튿날이 밝았다. 첫날 쉴 새 없이 빨빨거리며 돌아다닌 데다가, 간밤에 늦게 잤음에도 여행지에 왔다는 마음 때문인지 눈이 일찍 떠졌다. (사실은 잠자리가 바뀌어서 깊게 잠들지 못했다...) 계획해 놓은 일정이 무척이나 빡빡했기에 침대를 박차고 일어나 하루를 맞았다. 이튿날의 첫 일정은 불국사. 터미널 앞에서 불국사행 버스에 올랐다. 문득 눈 돌려 바라본 창 밖의 전원 풍경과 창문 틈으로 새어 들어오는 산들바람이 설렘으로 두근거리는 나의 가슴을 한층 더 보듬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기분이 참 좋았는데... 정작 불국사에서 마음이 좀 상했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끊고, 본격적으로 불국토의 세계로 들어가 본다. * 사적 제502호인 불국사는 경주의 자랑이자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유산으로, 1995년.. 더보기 이전 1 2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