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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황리단길 따라 도보 여행 숭혜전과 첨성대 그리고 야경(경주역사유적지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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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리단길의 피자옥이라는 식당에서 식사를 마친 뒤 본격적으로 길을 나섰다.

갖은 고분과 유적지의 옆으로 황리단길이 나있기 때문에 어디로 눈을 돌리던지 문화재를 마주할 수 있다는 점이 무척 이색적이었다.

한 국가의 천년 도읍이었음이 여실히 드러나는 풍경이었다.

 

숭혜전.(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56호)

 

경상북도 경주시 황남동 216.

 

내부에는 미추왕과 문무왕, 그리고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어진 정치를 회모하기 위한 위패가 모셔져있으며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외삼문에 해당하는 숭혜문이 보인다.

이곳은 임진왜란 때에 대부분 소실된 것을 조선 고종 대에 지금의 자리에 중건한 것으로, 건물 자체의 내력은 아주 오래지 않았다.

어째서인지 이 날은 내부에 들어갈 수 없었다.

근방에 숭혜전 공원이 아기자기하게 조성돼있는데, 밤에도 이쁜 조명이 들어와서 쉬어가기에 안성맞춤이었다.

 

숭혜문 동편에 세워진 경순왕 송덕비이다.

신라의 마지막 임금인 경순왕의 사적에 대한 비문이 비석에 새겨져 있는데, 신라 최후 오십육대왕...(新羅 最後 五十六代王)으로 시작된다.

비의 건립 연대는 조선 철종 9년(1858년)으로 추정되며 비의 높이는 2.3m, 폭은 97cm이다.

비각은 팔각 단층 기와로 돼 있는데, 담벼락에 둘러 싸여 있어서 가까이서 살펴볼 수는 없었다.

기울어져가는 위태로움 속에 서 있던 경순왕 김부는 935년, 끝내 태조 왕건에게 항복하였다.

그를 아꼈던 왕건은 김부에게 식읍으로 경주 지역을 주었고 그곳의 사심관으로 임명했다.

따라서 김부는 고려의 수도인 개성에서 지내며 식읍으로 받은 경주의 일에 관여하였는데, 불행히도 눈 감는 순간까지 고향인 경주로 돌아오지는 못하였다...

김부는 태조 왕건의 뒤를 이은 혜종, 정종, 광종 그리고 경종 재위 3년에서야 영면에 들었다.

그가 죽자 당시 운구 행렬은 김부의 장례를 위해 경주로 향하였는데, 고려 왕실에서는 그것을 막았다.

이유는 당시 고려는 왕권을 강화하던 시기였고, 만약 경주에서 김부의 장례가 치러질 경우 자칫 민심이 동요할 것을 우려해서였다.

따라서 개성에서 100리 안팎에 왕릉을 세울 것을 요구... 아마도 강요? 했다고 한다.

이에 경순왕 김부의 묘는 개성에서 경주로 향하는 남쪽 길, 지금의 경기도 연천에 위치해 있으며 신라의 왕릉 중 유일하게 경주 지역이 아닌 타 지역에 자리 잡은 능이됐다.

 

 

이리저리 고개를 돌릴 때마다 눈에 크고 작은 고분이 들어온다.

 

첨성대가 위치한 월성지구로 향하던 중 발견한 문호사.

 

일종의 서원이다...

 

 

경주역사유적지구.

 

이곳은 신라 천년 고도인 경주의 역사와 문화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불교 유적, 왕경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는데, 마찬가지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일본의 교토, 나라와 비교하였을 때 유적의 밀집도, 다양성이 더 뛰어난 유적지로 평가받는다.

 

신라의 역사와 문화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을 만큼 다양한 유산이 산재해 있는 종합 역사지구로서, 유적의 성격에 따라 지구가 나뉘어져 있는데 불교미술의 보고인 남산지구, 천년 왕조의 궁궐터인 월성지구, 신라 왕을 비롯한 고분군 분포 지역인 대릉원지구, 신라불교의 정수인 황룡사지구, 그리고 왕경 방어시설의 핵심인 산성지구로 구분돼 있다.

 

내부에 잘 정비된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이윽고 국보 제31호인 첨성대를 마주하게 된다.

 

선덕여왕 재위 기간에 만들어진 이 천문 관측대는 동양에서 만들어진 그것 중 가장 오래된 것이란다.

 

 

엄청난 인파가 있었으나 첨성대 본연의 모습만을 담고 싶어 애써서 찍은 사진...

 

술병처럼 생긴 첨성대는 지름 5.17m, 높이 9.4m로 비교적 소담한 크기이다.

 

네모난 모양으로 난 창문이 하나 있는데, 이는 사람이 드나들던 출입구였다...

 

사다리를 통해 안으로 들어가서 하늘을 관찰했던 것으로 보인단다.

 

국민 중 교과서에서 그 모습을 안 본 사람이 없을 만큼 유명한 첨성대는 사실상 그다지 볼거리는 없다.

 

그러나 약 1300여 년이 되도록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문화재라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그 가치는 몹시 소중하다.

 

아무래도 석조 건축물인데다가 야외에 덩그러니 놓여 있기에 화학적, 물리적 작용 등으로 인한 노후화, 그리고 폭우를 비롯한 각종 자연 현상으로 인한 붕괴 혹은 손실의 위험 때문에 첨성대의 안전관리 방안에 대한 연구가 끊임없이 진행되고 있다.

 

실제로 몇 년 전 포항에서 일어난 지진으로 인해 첨성대가 조금 기울었다는 말도 있으니, 교과서의 한 면에 지금의 온전한 모습을 길이길이 전하고 싶다면 미리 경각심을 가지고 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괜한 생각이지만 첨성대를 보는 동안 머릿속 한 편에는 작은 불안이 일었다.

 

담장이 낮기 때문에 누구나 넘어가서 첨성대에 접근할 수 있을 텐데, 혹여나 제2의 숭례문 화재 같은 국가적 손실이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모쪼록 우리 문화재를 소중히 아껴야 한다는 마음가짐을 늘 새기고, 그런 교육이 많이 필요하다고 본다.

 

야간에 다시 찾은 첨성대.

 

 

대단히 거창한 건 아니고 주변의 조명이 각양각색으로 바뀌며 첨성대의 모습을 밝혀준다.

(정림사지 오층석탑의 야간개장 모습과 비슷한 느낌을 받았다.)

 

하루하루 날이 선선해지고 있는 데다가 경주역사월성지구 내부는 너무너무 잘 조성돼 있기에 낮이건 밤이건, 시간만 허락한다면 천천히 걸으며 여유를 느끼기에 좋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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