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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신비로운 약초, 맥문동 수 놓여진 경주 계림 그리고 내물왕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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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성대를 둘러본 뒤 다시 경주역사월성지구 내부를 거닐었다.

 

첨성대를 지나 계림길로 들어서면 인왕동 고분군이 보인다.

인왕동 고분군은 사적 제42호로 경주시 인왕동 717 일대를 일컫는다.

지정 면적은 33.202제곱 미터이며 총 23기의 봉토분이 존재한다.

남쪽으로는 월성이, 서쪽으로는 황오동과 황남동 고분군이 위치해있다.

 

드넓은 벌판에 덩그러니 놓인 고분만 바라보기에는 다소 심심하던 찰나에 화려한 꽃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조성을 정말 신경써서 해놓은 듯하다. 산책하기에도 너무 좋고...

첨성대와 월성 사이에 위치한 계림으로 들어섰다. 이곳은 일종의 왕버들과 느티나무 등이 우거진 숲이다.

신라 건국 당시부터 있던 곳이라고 하며, 내부에는 약 100여 구의 고목이 존재한다.

참고로 계림은 신라의 또 다른 이름으로, 제3대인 탈해 이사금부터 15대 기림 이사금까지는 국가 명칭으로 계림을 썼다고 한다.

 

*알아가면 좋을 이야기

 

신라 초기에는 박, 석, 김씨의 세 성씨가 번갈아 가며 왕위에 올랐다.

 

박 씨의 시조는 박혁거세이고 석 씨의 시조는 석탈해이다. 박혁거세는 신라를 최초 세운 인물이고, 석탈해는 신라 제4대 탈해왕이다. 두 사람 모두 알에서 태어났다는 출생 설화를 가지고 있다.

 

그리고 김 씨의 시조는 바로 김알지이다.

 

어쩐지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풍기는 계림은 김알지의 탄생 설화가 시작된 곳으로, 삼국사기가 전하는 이야기의 내용이 인상적이다.

 

한밤중에 금성 서쪽에 있는 숲에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들은 탈해왕은(3대 왕) 날이 밝자 그곳으로 호공이라는 신하를 보냈다.

 

숲에 다다른 호공은 금빛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 있고, 그 아래서 흰 닭이 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단다.

 

이 사실을 전해 들은 탈해왕은 궤짝을 가져오게 헀는데, 그 안에는 사내아이가 있었다고 한다.

 

하늘이 그에게 아들을 내려 보냈다고 여긴 탈해왕은 그 아이를 거두어 길렀는데, 알에서 나온 아기라는 뜻으로 이름은 알지라고 했고, 성은 금빛 궤짝에서 나왔다 하여 김 씨로 했다고 한다...

계림의 초입에서 마주할 수 있는 회화나무.

나무의 10%가량, 거의 그루터기만 남아있는데 회화나무는 잡귀를 물리치는 나무라고 알려져 사람이 사는 집에 많이 심었고, 조선시대에도 궁궐의 마당이나 출입구 부근, 서원이나 향교의 학당에도 이를 심어 악귀를 물리치는 염원을 발했다고 한다.

위의 회화나무는 직경 2m 정도이며 수령은 약 1,300년 정도나 된 고목이다.

비록 그루터기만이 남아있지만 그 연대가 오래된 데다가, 계림 자체가 워낙에 신비스럽고 울창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곳이기 때문인지 회화나무가 내뿜는 신묘한 에너지가 지대했다.

무엇보다도 지금까지 내가 본 나무들 중 그 수명이 가장 긴 나무가 아닌가 싶다...

 

계림비각의 모습이다.(계림 김씨 시조 탄강 유허비)

 

계림김씨시조탄강유허비(鷄林金氏始祖誕降遺墟碑)는 김알지(金閼智)
가 탄생한 계림(鷄林) 안에 위치해 있다. 김알지는 신라 김씨 왕족
의 시조이다. <<삼국사기(三國史記)>>의 신라본기(新羅本紀) 탈해왕
(脫解王) 9년(65)조에 ""호공(瓠公)이 시림(始林)에서 비치는 큰 광명을
찾아가니 자색구름이 하늘에서 땅에 뻗치고 구름 속의 황금 궤가
나무 끝에 걸렸는데, 그 빛은 궤로부터 나왔고 흰닭은 나무밑에서
울었다. 그 궤에는 동남(童男) 하나가 누웠는데, 그 아이가 김알지였
다.""고 하는 기사가 나온다. 김알지는 이후 탈해왕의 태자로 책봉되
었으나 파사왕(婆沙王)에게 왕위를 양보하였다. 김알지의 후손들은
그 7세손인 미추(味鄒)가 왕위에 오름으로써 왕족이 되었으며 신라
의 56왕 가운데 38왕을 배출했다. 계림김씨시조탄강유허비는 '계림
비각(鷄林碑閣)' 안에 있으며, 비문은 남공철(南公轍)이 지었다.

출처: https://portal.nrich.go.kr/kor/overviewUsrView.do?menuIdx=572&mcidx=22983

 

국립문화재연구원 문화유산연구지식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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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림의 내부, 특히나 계림비각의 주변에는 보라색 맥문동이 물결을 친다.

비슷한 컬러이나 향기 짙은 라벤더와는 달리, 맥문동은 특별한 향은 없으나 유려해 보이면서도 동시에 강인함이 느껴지는 매력이 있다.

심지어 넓은 면적 가득 군락을 지어있으니 그 신비로움은 더할 나위가 없다.

무엇보다도 맥문동은 약초로써 상당한 효능이 있고, 물에 달였을 때 진하고 구수한 맛이 있어서 나 역시 참 좋아하는 약초이다.

어릴 적 동네 공원에 맥문동이 참 많았었는데, 하루는 한 어르신이 맥문동의 뿌리를 캐던 모습을 목격한 기억이 아직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사적 제188호 내물왕릉의 모습이다.

내물왕은 성은 김 씨이며 이름이 내물이다...

삼국사기에는 이사금으로 기록돼있고, 삼국유사에는 마립간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삼국사기에는 마립간의 칭호를 눌지 마립간부터 지증왕까지 4대에 걸쳐 사용했다고 기록돼 있으나, 삼국유사에는 내물 마립간부터 지증왕까지 6대에 걸쳐 사용했다고 되어 있다.

한국사를 공부하다 보면 내물 마립간이라는 표현이 더 익숙할 것 같다.

왕이라는 호는 지증왕 때부터 사용했기 때문이다.

신라 대부분 고분군의 양식인 돌무지덧널무덤으로 돼있는 것이 특징인데, 사실 이것이 진정 내물 마립간의 무덤인지에 대해 의문이 존재한다고 한다.

기록에는 첨성대 남쪽의 무덤 중 내물 마립간의 그것이 있다고 하는데, 첨성대 남쪽에 위치한 무덤 중 인교동 119호분이 더 왕릉으로서의 면모를 갖추고 있어서이다.

 

 

계림을 수놓은 보라색 맥문동의 향연을 감상하며 경주역사월성지구와의 작별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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