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중문화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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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일부터 9일까지 진행되는 궁중문화축전.
서울의 다섯 궁궐 및 종묘에서 진행되는 각종 행사로, 이미 지난 9월 중순에 예정 프로그램 공개와 사전 예약이 오픈됐었다.
사전 예약을 하지 않아도 현장에서 즉석으로 더러 진행되는 행사에 참여할 수 있기에, 재미난 경험과 추억을 만들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포스팅하는 지금 이 순간을 기준으로 오늘내일 밖에 시간이 남지 않았지만...
나는 10월 7일 금요일부터 9일 일요일까지 사흘에 걸쳐 진행되는 고궁 책방 - 고종의 초대라는 행사에 참석하게 됐다.
이는 경복궁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으로, 경복궁 내의 가장 북쪽 끝자락인 집옥재 앞에서 열렸다.
광화문을 통해서 입장했기에 근정전을 시작으로 사정전, 강녕전, 교태전 등 여러 거대 전각들을 지나고 지나 집옥재 앞에 다다를 즈음엔 벌써 당이 다 떨어질 지경이었다...
고종의 초대라는 행사는 금, 토, 일 사흘간 각기 다른 주제를 다루는 일종의 인문학 강의인데, 주제는 대한제국 시기 고종의 근대 문물에 대한 견해를 다루며 고종의 삶을 알아보는 것으로, 피아니스트 문아람씨가 함께 참여하여 아름다운 피아노 선율이 더해진 인문학 콘서트이다.
더불어 행사가 진행되는 집옥재, 팔우정, 그리고 협길당은 지난 오랜 시간 동안 복원 공사가 이루어지다가 대중에게 재공개된 지 오래지 않았는데, 이곳은 과거 고종이 사색을 하며 독서를 하던 장소였기에 이번 행사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좌측부터 팔우정, 집옥재, 협길당.
이 3채의 전각은 본래 창덕궁 함녕전의 별당으로 지은 것이었으나, 1888년 고종이 창덕궁에서 경복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옮겨온 전각들이다.
고종은 이곳에서 외국인 사신을 접견하고, 서적을 보관하였으며, 때때로 쉬어가는 곳으로 사용했다.
즉 고종의 흔적이 가득 담긴 곳이라고 할 수 있다.
앞서 언급했듯이 복원 공사를 마치고 새로이 개장을 하면서 내부 입장이 가능해졌는데, 내부는 방문객들이 앉아서 쉬어가며 사색에 잠기고, 독서를 할 수 있도록 조성돼있다.
특히나 집옥재의 경우, 그 의미가 옥처럼 소중한 보물(서적)을 보관하는 곳이라는 의미에 걸맞게 내부에는 각종 서적을 비치해 두었다.
본래 집옥재에 남아있던 대한제국 당시의 서적은 현재 장서각으로 옮겨 보관 중인데, 그 수가 수만에 달한다고 한다.
방문 당시 행사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기에 내부 사진을 제대로 담지 못했는데, 조만간 재방문하여 시간을 보낼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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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옥재와 팔우정, 협길당은 11월 7일 수요일까지 개방한다.(휴궁일 제외)
더불어 10월 9일 궁중문화축전의 마지막 날까지는 이 세 전각에서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팔우정 - [사색] 행복을 선택하는 시간 : 자문자답 형식의 워크북을 통해 손으로 하는 명상 및 사색 프로그램
집옥재 - [관람] 작은 도서관 : 조선시대 관련 책들과 왕실 자료 등 책이 비치되어 있어 책을 보고 관람할 수 있는 공간
협길당 - [체험] : 전통매듭 책갈피 만들기 : 나비 날개 매듭과 가락지매듭을 활용한 책갈피 만들기 프로그램
집옥재 앞에 조성된 행사장.
사전 예약자들에 한해 좌석이 마련됐으며 기념품(독서 우드링)과 음료가 제공됐다.
야외 강연 행사이기에 굳이 예약을 하지 않아도 이 인근의 벤치에 앉아서 강연을 들을 수는 있다.
팔우정과 집옥재를 배경으로 기념품 인증샷...
내부 개방 및 행사 진행으로 인해 팔우정과 집옥재 내부에 인파가 보인다.
천고마비의 계절이다.
황사 또는 미세먼지가 없다는 전제 하에 봄의 하늘과 가을의 하늘은 비슷해 보이지만 느낌은 사뭇 다르다.
가을의 높고 푸른 하늘은 어쩐지 깊은 호수의 물 같달까?
오래 들여다보고 있자면 괜스레 마음이 저 아래로 가라앉는 것처럼 차분해지고는 한다.
문아람 피아니스트의 오프닝 연주, 스티브 바라캇의 레인보우 브릿지를 시작으로 인문학 강의가 시작됐다.
사회는 오유경 아나운서가, 그리고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관장인 주영하 교수가 패널을 맡았다.
오늘의 강연 주제는 고종이 사랑한 생활문화였는데, 고종의 식습관과 당시의 음식 문화를 큰 틀로 하여 근대화에 노력하였던 고종의 삶을 들여다보는 시간이었다.
고종의 입맛은 무척이나 한국적이며 자극적인 것보다는 간이 심심한 음식을 좋아했다고 전해지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대화에 발맞추어 서양식을 수렴하였단다.
그가 주로 즐겨 먹었던 한식으로 골동면이라는 음식을 들 수 있는데, 이는 현재 시중에서 판매하는 곳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
골동면은 마치 평양냉면 또는 메밀국수와 비슷한 메밀면으로 이루어진 음식으로, 조선간장으로 간을 하고 고기 완자와 계란 지단을 얹어 비벼먹는 것이란다.
그러나 외국인 사신, 혹은 주요 해외 인사와 겸상을 할 때에는 그들의 입맛에 맞추어 서양식을 즐겼고 테이블 문화, 이를테면 식탁에서의 자리 배치 등도 서양의 문화를 받아들였다는데, 이런 부분에서 미루어 볼 때 비운의 왕이라고 전해지는 고종은 나름대로 묵은 것을 떨쳐 내고 근대 문물을 수용하고자 하였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주영하 교수의 말에 의하면 1905년 9월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인 앨리스가 인천항을 통해 국내에 방문 시, 그녀를 위해 대접했던 식단의 기록이 남아있다는데 그 메뉴들이 아주 참신하다.
아스파라거스 머리 부분을 이용한 수프, 버섯을 곁들인 생선구이, 젤리로 굳힌 푸아그라, 송로버섯을 곁들인 안심 숯불 구이, 하와이를 통해 들여온 통조림으로 만든 파인애플 아이스크림, 그리고 꼬냑이란다...
(당시 이 식단을 차린 것은 손탁 여사의 후임 격인 독일 여성 엠마라는 이다.)
고종이 루스벨트의 딸인 앨리스 양을 위해 이토록 진수성찬을 마련한 이유가 참 아련하다.
1905년, 바로 을사조약이 강제로 체결된 해이다.
고종은 마침 내국을 방문한 미국 대통령의 딸에게 잘 보임으로써(?) 부디 풍전등화에 놓인 대한제국의 원통함이 미국 대통령의 귀에 들어가기를 바란 것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당시 앨리스는 이 식사와 연회를 즐기지 않고 그냥 돌아갔단다...
이에 가슴이 무너져 내린 고종은 바로 다음날 다시금 앨리스를 극진히 환대하는 자리를 마련하는데, 1905년 9월 20일 낮 12시 덕수궁의 중명전에서였다.
이 날은 고종이 최초로 서양인 여성과의 식사를 한 날로, 식단은 열구자탕, 즉 신선로를 비롯하여 고종이 즐겨 먹는 골동면 등이 나왔단다.
그러나 미국에 잘 보이고자 노력 아닌 노력을 했던 고종의 헌신은 참으로 순진한 것이었다.
당시 미국은 이미 일본과 가쓰라 - 태프트 밀약을 체결한 직후였으며, 이 밀약은 일본의 대한제국 지배를 인정한다는 것이다...
고종의 손길이 잔뜩 묻은 경복궁 북쪽 끝자락의 세 전각들.
오늘날 우리나라, 서울을 대표하는 궁궐 내부의 한 부분임에도 어쩐지 쓸쓸함이 느껴지는 건 대한제국의 황제 고종의 근심이 서려 있기 때문일까.
궁중문화축전의 일환인 고종의 초대 강연을 듣고서 경복궁의 북문인 신무문으로 나오는 길.
찬란했던 조선왕조의 아픔이 담긴 그 끝자락의 이야기를 강연으로 들어서인지 괜스레 마음이 울적했다.
신무문을 통해 나오면 눈앞에 보이는 청와대의 모습.
이제는 국민에게 개방된 곳이기에 많은 방문객들이 보였다.
경복궁을 크게 한 바퀴 둘러보고 나와 송현동 부지로 향했다.
그간 경복궁에서 덕성여고, 삼청동길로 이어지는 길을 가로막고 있었던 높다란 장벽이 전부 치워졌다.
그리고 그곳은 시민들에게 개방된 송현녹지광장, 잔디공원으로 새단장을 했다.
개방 행사로 연예인 및 서울 시장이 방문한다는데 그 행사를 직접 보지는 않았다.
사실 부지 개방 소식을 접했을 때에는 조금 기대감을 가지고 있었으나, 막상 눈으로 보니 실망스러움이 먼저였다.
서울 중심부에 조성된 잔디공원이니 만큼, 조금 더 스페셜한 요소를 기대했으나 나의 예상과는 달리 정말이지 잔디만 깔린 쉼터였다.
주말이라면 돗자리를 준비해서 올 수 있다지만 평상시엔 이 잔디 바닥에 털썩 앉기도 뭐하지 않을까? 심지어 공원 내외부로 벤치가 그리 많아 보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미관이 무척 아름답게 꾸며진 것도 아니었고 너무 황급히 개방을 한 듯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도 이 근방의 직장인들이 점심시간에 거닐며 숨을 돌리기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도 지난 수십 년간 개발되지도 않았을뿐더러, 높다란 철제 벽으로 가려져 있어 도시 미관을 해치던 곳이 이렇게나마 뻥 뚫린 시민공간으로 재탄생했다는 데에 큰 의미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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