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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마치 새 건물 같은 국내 최고의 목조 건축물 안동 봉정사 극락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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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15호 안동 봉정사 극락전.

 

대웅전이 따로 있음에도 불구하고 봉정사의 꽃과도 같은 건축물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이라는 그 타이틀 덕분이다.

 

나무 특성상 물리적, 화학적, 자연적 요소로 인해 훼손되거나 오염될 우려가 큼에도 불구하고 천년의 세월 동안 그 고유의 자태를 간직한다는 것은 무척이나 주목할만한 일이다.

 

흔히 국내에서 오래된 목조 건축물을 언급할 때 안동 봉정사 극락전,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예산 수덕사 대웅전을 들고는 하는데, 극락전과 무량수전은 정확한 창건 연대가 밝혀지지는 않았다.

 

다만 중수 기록등을 미루어 추측하건대 봉정사 극락전은 120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부석사 무량수전은 이보다 대략 13년가량 뒤늦을 것이라는 견해가 다수설이다.

 

이에 반해 수덕사 대웅전은 창건 연대가 정확하게 밝혀 졌는데, 고려 충렬왕 34년인 1308년이다.

 

극락전 앞뜰의 삼층석탑에 대한 설명이다.

 

건립 연대는 극락전과 같을 것으로 보고 있다.

 

비례미는 갖추고 있으나 별다른 특징이 없고, 규모도 작아서 국보 또는 보물로 지정되지는 않았다.

 

극락전의 편액 그리고 주심포 양식이 돋보이는 처마 아래의 공포.

 

총 4칸으로 이루어진 측면의 모습이다.

 

사람 인자의 글씨처럼 보이는 맞배지붕은 4칸의 벽면과 어우러져 상당한 대칭미를 자랑한다.

 

기둥은 안정감을 주기 위해 가운데가 불룩한 배흘림기둥이다. 무량수전에 비해 기둥 자체가 비교적 얇아서 그런지 배흘림기둥이라는 느낌을 잘 받지 못했는데, 가운데에 비해 상부가 얇은 것은 확실하다.

 

극락전 자체는 고려시대의 건축물이지만 이러한 양식은 통일신라 후기의 것을 수렴한 것이다.

 

편액의 아래의 빛바랜 단청이 인상적이다.

 

얼굴의 생김새와 팔과 다리가 제법 뚜렷하게 보이는 용 한마리가 이곳을 수호하는 듯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그리고 용의 좌, 우로 한자가 쓰여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흔히 사찰에서 보기 어려운 풍경이다.

 

좌측에는 주상전하, 우측에는 성수만세 라는 글귀가 적혀 있다.

 

임금에 대한 칭송의 문구인데, 과거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 안동 지역까지 피난을 내려왔을 때에 불사에 힘을 실어 준 공민왕에 대한 찬양의 마음을 담은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당시 공민왕은 영주 부석사에도 들러 무량수전의 현판을 친필 하기도 하였다...

 

극락전 내부에는 단 한 분의 아미타불만이 모셔져 있다.

 

협시 보살이 없음에도 위엄이 드러나는 근엄한 자태, 엄숙한 표정에 상당히 압도됐다.

 

게다가 불단의 위쪽 닫집이 그러한 분위기를 더욱 고조시켜준다.

 

개인적으로 닫집은 공작산 수타사 대적광전의 그것이 무척 인상적이라고 생각하는데, 아래의 포스팅에서 비교해 보면 좋겠다.

 

 

수려한 자연경관과 어우러진 소박한 규모의 사찰 공작산 수타사

연휴를 맞아 서울에서 비교적 가까운 강원도 홍천의 수타사를 다녀왔다. 홍천9경 중 제6경이라는 공작산 수타사. 수타사로 이어지는 산책로를 걷다보면 다양한 나무와 야생화를 마주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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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간결한 형태의 창.

 

정면에서 바라본 삼층석탑과 극락전의 모습.

 

정면의 출입문을 중심으로 좌우 칸에 창문을 낸 고려시대의 전형적인 감실형 양식이 무척 인상적이다.

 

사실 국내 최고의 목조 건물이라는 타이틀에도 불구하고, 부석사 무량수전이 주는 압도적인 분위기에 비하면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부석사 무량수전에 비해 규모가 훨씬 작고 아담한 규모이기는 하지만, 무엇보다도 복원 당시 부실한 공사를 한 탓이 크지 않나 생각해 본다.

 

복원 전 1960년대에 촬영 된 봉정사 극락전의 모습. (출처:문화재청 보고서)

봉정사 극락전은 현대에 들어서도 해체 복원 공사가 진행됐는데, 이 과정에서 화학 안료를 사용하여 새로이 페인트 칠을 해버렸다는 점과 더불어 무분별한 복원 공사를 감행하였다는 평을 받는다.

 

본래 극락전의 마루는 대웅전과 마찬가지로 툇마루 형태였으며 바람을 막는 풍판이 있었다. 그런데 이것이 극락전의 건립 당시부터 있던 것인지, 조선시대에 들어서 새로이 만든 것인지 정확히 밝혀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현대에 들어 복원 당시 극락전 원형을 그대로 유지하겠다는 명목 하에 툇마루와 풍판 등을 모조리 제거해 버렸다.

 

이런 이유로 무분별한 복원 공사를 하지 않은 부석사 무량수전과 달리, 비교적 새 건물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아래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관련 포스팅이다.

 

 

 

그 어떤 괴로움도 없고 오로지 즐거움만이 가득한 곳 부석사 무량수전

10만억 불토를 지나 극락정토를 향하는 여정과도 같이, 일주문에서부터 안양루까지 오른 끝에 마침내 무량수전의 앞에 다다랐다. 국보 제17호인 무량수전 앞 석등과, 국보 제18호 무량수전.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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