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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삼국통일에 이바지하였던 태대각간 흥무대왕 김유신의 묘(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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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서의 셋째 날이 밝았다.

상경행 ktx가 오후 시간대였기에 몇 군데의 유적지를 더 둘러볼 여유가 있었다.

그리하여 결정한 목적지는 김유신 묘와 무열왕릉 두 군데였다.

숙소가 위치한 경주 고속터미널 인근에서 김유신 묘 까지는 그리 멀지 않은 거리였기에, 그냥 도보로 가기로 했다.
(김유신 묘 인근을 지나는 대중교통 수단이 마땅치 않기도 하다.)

터미널에서 김유신묘까지는 길이 잘 조성돼있어 걸을만하다.

매표소에서 입장권을 구매하고서 발을 옮기다 보면 김유신의 일대기를 기록한 신도비가 보인다.

비각은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으로 제법 사이즈가 크다.

신라 태대각간 순충장열 흥무대왕 김유신 신도비.

신라의 17 관등 중에서 가장 높은 제1관등은 각간이었다.

그러나 660년, 태종 무열왕은 자신의 절친이자 백제를 정벌하는 데에 큰 공을 세웠던 김유신에게 각간이라는 관등 앞에 대자를 붙여 대각간이라는 벼슬을 내린다.

이후 668년, 문무왕은 자신이 믿고 따르는 삼촌이자 고구려의 멸에 큰 공을 세운 김유신에게 태대각간이라는 벼슬을 하사한다.

즉 대각간, 태대각간이라는 벼슬은 비상위 관등으로, 특별한 공헌에 대한 보상이었던 것이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김유신 사후(162년 후) 흥덕왕은 김유신을 흥무대왕으로 받들고, 왕릉의 예를 갖춰 무덤을 장식하게 하였다고 한다.
(김유신 묘를 장식하는 십이지신상은 아마도 이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한다.)

이처럼 김유신은 신라인들에게 무척이나 존경받고 사랑받던 존재였다.

이 비석의 비문은 1933년 정인보가 지었다고 나와있는데, 양명학의 대가이자 일제의 역사 날조를 비판하며 얼사상을 강조하였던 역사학자 정인보를 의미하는 건지 혹은 동명이인인지는 모르겠다.

동시대임으로 미루어보아 아마 그 정인보인듯하다.

김유신은 79세에 별세했는데 당시 수많은 전쟁터를 누볐음에도 꽤나 장수하였다는 사실이 무척 놀랍다.

묘의 출입구인 흥무문이다.

군데군데 칠이 벗겨지고 빛이 바랜 흥무문과 주변의 높다란 나무들이 어우러져, 마치 무협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흥무문을 지나 약 300m가량을 오르다 보면 이윽고 사적 제21호 김유신 묘를 마주하게 된다.

묘의 정면 동, 서편에 배례석 신도비가 각 하나씩 세워져 있다.

이곳은 송화산 옥녀봉에서 동쪽으로 뻗어 내린 능선의 중턱인데, 김유신 묘를 만들기 위하여 능선을 깎아 완만한 평지를 조성하였다고 한다. 이 터는 신라의 역대 왕릉이나 귀족들의 묘들 보다도 넓은 면적이다.

18세에 국선 화랑이 된 이래 무수한 업적을 남기며 삼국통일에 앞장섰던 인물을 기리기 위한 최대의 예우였을 것이다.

묘의 지름은 15.8m이며 봉분의 높이는 5.32m이다.

서편의 비석이다.

비의 앞면에는 신라태대각간김유신묘라고 적혀있다.

참고로 뒤편에는 숭정기원주갑후경인이라고 적혀있으며 이를 통해 이 비석이 조선 시대 중엽에 세워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정확히는 조선 숙종 36년(1710년) 경주 부윤으로 재직하던 남지훈이 세웠다.]

왕이라는 칭호에 걸맞게 둘레돌이 따로 만들어져 있고, 봉분의 아래쪽에는 십이지신상이 부조로 조각돼있다.

십이지신상은 모두 무복이 아닌, 평복을 입고서 무기를 들고 있다는 특징이 있으며 전부 오른쪽 방향을 보고 있다.
(다른 왕릉의 십이지신상은 갑주무복을 착용한 채 무기를 들고 있는 경우가 많다.)

사실 이곳을 찾았던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봉분을 장식하고 있는 이 십이지신상 때문이었다. 이는 굉장히 보기 드문 것으로 한국사 문제에 단골로 나오는 것이기도 하다...

내가 양띠라서 양의 모습을 담아 보았다...

묘를 다 둘러보고 흥무문으로 나가는 길.

한국사에서 왕족이 아닌 인물이 왕의 칭호를 받은 것은 몹시 드문 일이다.(아마도 김유신이 유일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여타의 왕릉과 비교했을 때 김유신 묘는 규모나 장식에서 결코 뒤처지지 않는 장엄한 모습을 자랑한다.

여담이지만 한 시대를 호령했던 대장군의 묘역이기 때문인지 왠지 모를 강인한 기운이 느껴지기도 했다...

기회가 된다면 추후 최영 장군의 묘에도 방문해 비슷한 기분이 느껴지는지 확인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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